“중생의 편에서 중생을 섬겨라” … 성철도 한때 용성 스님 모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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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03-26 조회3,4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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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편에서 중생을 섬겨라” … 성철도 한때 용성 스님 모셔
2010.03.08 10:34 입력 / 2010.03.09 16:17 수정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백두대간에서 호남정맥으로 분기한 장안산(1237m·전북 장수군)의 지맥이 섬진강 상류와 만나 명당을 이룬 터가 바로 백용성(본명 白相奎) 스님의 생가다.
두메산골 소년 백상규는 어릴 적부터 뜻이 산문(山門)에 있었다. 한학을 배우던 영특한 소년은 납자(衲子)가 돼 어두웠던 시대에 횃불을 들었다. 한국불교의 근대화와 조국의 독립에 주력한 용성은 조계종 스님 중 절반이 그의 문도라고 할 만큼 큰 영향력을 끼쳤다.
동산·고암·인곡·동암·동헌·자운·운암·혜암·소천 등 이른바 구제(九第)를 두었고 법손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동산의 제자인 성철도 용성의 법손(法孫)이다. 성철은, 범어사 내원암에서 잠시 머물던 만년의 용성을 가까이서 시봉했다.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지켜낸 용성은 유훈 열 가지를 남겼다. 그 유훈을 하나하나 떠받들고 있는 법손이 도문(道文·76) 조실 스님이다.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의 선적지인 서울 우면산에 대성사를 지었고 아도화상이 모례장자에게 설법한 구미에 신라불교 초전 기념관인 ‘아도모례원’을 세웠다.
용성 스님의 탄생지에 죽림정사를 세워 성역화한 도문 스님은 현재 네팔 룸비니에 석가사를 짓고 있다. 장안산 자락의 따사로운 봄빛처럼 온화한 스님은 법문을 할 때면 기백이 넘쳤다.
“대각사상의 요체는 간단합니다. 먼저 자신부터 깨닫는 자각(自覺), 또 다른 나인 타인을 깨닫게 하는 각타(覺他), 깨달음의 실천인 각행(覺行)을 통해 온 세상에 깨달음이 가득하면 그것이 곧 각만(覺滿)이요, 극락입니다.”
서울 대각사 장산(長山·61) 주지스님은 용성 스님의 유훈 가운데 열 번째 사목을 들며 보다 적극적인 의미의 포교를 강조한다.
“용성 스님은 ‘잘난 이나 못난 이를 가리지 말고 인연 따라 신도를 삼아 찬양도 비방도 함께 수용하라’고 했어요. 중생의 편에 서서 중생을 섬기는 불교가 돼야 합니다. 현실을 몰이해하고 편협한 생각에 머무는 측면이 있어요. 부처님 눈으로 보면 정치인이나 기독교인이나 모두 보듬어야 할 중생이지요.”
적극적인 포교를 강조하는 장산 스님은 시대에 맞는 포교를 역설한다.
“미국 포교에 매진해야 해요. 문명사적 측면에서 대전환기잖아요. 형식은 다양하겠지요. 1906년 용성 조사께서 도봉산 망월사에 주석하실 때 해인사 낡은 장경판을 보수하셨어요. 친견하러 온 궁중의 임 상궁을 움직여 고종으로부터 2만 냥의 국고 지원을 받았지요. 팔만대장경은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인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콘텐트를 만들 수 있겠지요. 영상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것도 세련된 포교방식입니다.”
『주역』에 ‘그 사람이 아니면 도는 허허롭게 행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용성문중의 원력이라면 막힘이 없을 것 같다.
김종록 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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