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조사와태극기 용성진종조사 탄생 가할만인성지 장안산하 죽림정사

태극의 진리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우치게 하라

기미년 서기 1919년 3월 한반도에서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의 물결을 이루었다.
이 태극기는 조직적이면서 체계적으로 제작되었으며, 민족의 상징이 되었다.

3.1 만세운동과 백용성 조사

용성진종조사는 기미년 3.1독립운동을 만해 한용운대사와 준비할 때 용성진종조사가 “독립운동만세운동에 사용할 깃발은 무엇을 상징하는게 좋겠는가?”라고 묻자 만해 한용운대사는 “동방 3팔목(東方三八木)은 청색(靑色)이므로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우리나라 지도 형태인 조선 반도기를 흰바탕에 청색으로 도안해서 제작하자는 의견들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용성진종조사는 미리 마련하였던 태극기 설명문을 내어주며, “우주세계 모든 존재는 체(體)·상(相)·용(用)의 삼대원리(三大願理)에 연관되어 있지 않는가.

그러기에 태극기 물결을 일으키자는 것일세. 열반의 경지인 무극(無極)이 체가 되고 태극(太極)이 상(相)이 되며 음양 (陰陽)이 용(用)이 아니겠는가. 천도교의 이상의 경지가 인내천(人乃天)인 한울이고 이 한울이 태극인 것이며, 기독교의 이상의 경지가 천국(天國)이요 이 천국이 태극인 것이다. 불교의 최고 이상은 보리도 열반(涅槃)이며 이 열반의 다른 이름이 무극(無極)인 것이다. 수리(數理)로 논지하자면 일(一) 십(十) 백(百) 천(千) 만(萬) 억(億) 조(兆) 경(京) 해(垓) 자(秭) 양(壤) 구(溝) 간(澗) 정(正) 재(載) 극(極)인 것이다. 이 무한극수(無限極數)가 수리의 최고·최상 이듯이 무극의 이명(異名)인 열반이 최고·최상의 경지라 하겠다“. 우리 인생은 상생(相生)·상극(相剋)의 업력으로 윤회하는데 되도록 이면 상극의 경지에서 상생의 경지로 향상해서 상생·상극의 업력을 벗어버린 태극의 경지에 이르고 더 진일보하여 열반의 경지인 무극에 이르도록 수행하자는 의미가 있으니 이 태극의 진리로 모든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우쳐 최고·최상의 경지인 무한극수(無限極數)에 이르도록 수행해야 할 것이며 만일 한반도기를 사용할 경우 발해, 고구려의 옛땅이 우리땅이 아님을 만천하에 선언하는 결과가 될 것 이라고 강조하며 설득하자, 이를 수긍한 만해 한용운대사는 민족대표들을 이해시켜 반도기 대신 태극기의 깃발을 휘날리게하여 태극기 물결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태극기에 관하여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를 사용하게 된 것은 운양호 사건이 계기가 되어 1882년에 박영효 일행이 수신사로 일본에 갈 때 배안에서 제작하여 내걸면서 부터이고, 국내에서 국기로 제정하여 공포 사용한 것은 1883년이다.
일본 동경도립중앙도서관에서 조선에 처음으로 국기가 만들어졌다는 기사와 함께 태극기 그림이 실린 시사신보(1882. 10. 2 월요일)를발견, 이 사실을 1997년 8월 15일 언론에 공개하므로써 115년만에 그 발자취를 찾아내게 되었다. 괘의 모습은 현재 태극기와 상당히 다르고 음방과 양방의 배치도 좌우 대칭되어 있다.

시사신보(時事新報)가 발견되기 전까지만해도 1885년 고종황제가 당시 외무담당 미국인 데니씨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가 사용되었는데 발행될때마다 그 모양이 달라 혼란을 초래하였으며, 1900년 파리 박람회 장소에 게양하였던 태극기는 유연한 곡선의 음방(청색)과 양방(홍색)이 좌우로 배치된 것과 4괘가 귀퉁이에 있지 않고 열십자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태극기 도안이 되기까지에는 1949년 42인의 국기 시정위원회의 수차례 의논과 우여곡절을 겪고 결정되었다. 당시 광복과 함께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였으니 국기도 새로운 도안으로 만드는 것이 어떻 겠는가는 논란이 가장 두드러졌으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항거하다가 순국한 애국지사들이 태극기를 가슴에 묻고 조국의 광복을 빌었으니 그분들의 넋을 달래고 또 갈라진 남북이 통일되면 한반도 전체의 의견이 수렴된 국기를 만들 기회가 있으니 도안의 4괘 위치가 다소 논란이 있다하더라도 일제 강점기 동안 가장 많이 그려지고 사랑받았던 현재의 태극 도안대로 국기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태극기는 기미년 3.1독립만세운동으로 한반도에 물결을 이루면서 우리의 진정한 상징으로 자리하게 된것이다.


1890년 광무황제(고종)가 조선 정부의 외교 고문으로 일하던 미국인 데니 씨에게 하사한 것으로, 우리나라에 가장 오래된 태극기


상해 대한민국의정원에 걸렸던 태극기
(임시의정원은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존속한 입법부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방침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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